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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박민규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와 비틀즈 eleanor rigby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반바지 차림으로 앉아, 우리는 눈을 감았다. 감각과 상식을 지닌 손이, 더듬어 벨트를 매고 차창을 닫았다. 버스의 등받이는 우주의 품처럼 깊고 푹신했고, 무덤에서 돌아온 맥킨지 신부가 손에 묻은 더러운 걸 닦아낼 즈음, 서서히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구원되지 않았어요. 저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저 외로운 사람들은 모두 어디서 살까요? 버스는 날아올랐다. 민규,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2004

 

1. 박민규

사용자 삽입 이미지

90년대의 윤대녕은 제목을 잘 짓는 작가 소리를 들었다. 은어낚시통신,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2000년대의 박민규는 제목을 대충 짓는 작가 같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 하세요 펠리컨,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이게 뭔가?

카스테라의 끝은 이상하게도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카스테라를 씹으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이며,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는 과연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로 끝난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그렇습니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로 맺는다. 이 얼마나 예측 가능한 유치한 수미상관적인 발상인가?

박민규 단편의 제목들은 장난 친 것처럼 엉뚱한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장난은 커녕 매우 치밀하게 구성된 그의 작품의 핵이다. 단편을 읽는 짧은 시간 동안, 어수선한 박민규의 너스레에 제목이 뭐였는지를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데, 마지막 순간 제목이 핵폭탄처럼 터지는 것이다.

가사의 첫 줄로 제목을 삼아 만든 정직한 비틀즈의 히트곡들처럼, 박민규는 늘 제목과 작품의 유기적인 상관관계가 도드라지는 작품으로 히트를 날리고 있다. 그럼 어느 소설은 제목과 작품이 유기적이지 않냐고? 박민규는 그럴 것 같지 않으면서도, 정신 나간 사람의 너스레 같다가도, 숨이 꽉 막힐 것 같은 정교한 구조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박민규의 소설처럼 공학적으로 계산된 소설도 흔치 않다.(평론가 신형철)

지금까지 남긴 유일한 단편소설 모음집 카스테라에 대해 박민규이 책은 지미 핸드릭스의 데뷔앨범 「너 해봤니(Are You Experienced)?」와 같은 열 개의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다. 너 해봤니 라니, 언제 들어도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고 소개했다.

 

2.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카스테라
박민규 지음/문학동네

소설집 카스테라에 수록된 이 단편에 대해 작가는 기타리스트 신윤철씨에게 주는 선물로 씌어졌다고 했다(박민규는 참 음악적인 작가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270수만에 한 집 반 승을 거두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느낌의 바둑강아지 리플리의 뼈를 정원에서 발견하고 다시 묻어줄 무렵, 스무 살이 되던 날 아침 지구를 한번 떠나보자고 결심하면서 시작한다. 그의 결심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캐나다에서 창조과학단체(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과학자들의 모임)의 인턴으로 일했던 듀란(그 듀란 듀란에서 따온 이름이다. 역시 음악적이며 우주적이다)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준비되었다. 그들은 고무동력기를 타고 개복치 여관이라는 낡은 간판이 걸려 있는, 그러나 사실은 우주기지인 곳으로 날아간다. 갔더니 그곳에서 링고 스타(그렇다. 음악적이라니까!)를 만난다. 듀란과 나는 링고 스타의 배웅을 받으며 지구를 떠난다. 지구를 떠나보지 않고선 세계의 정체를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우주선, 그러니까 한 대의 그레이하운드에 올라 탄 두 사람은 몇 시간 만에 달의 뒤편에 다다랐고 한 시간 뒤 아주 납작한 지구를 보게 된다. 그것은 한 마리의 거대한 개복치였고, 때마침 지구는 3억개의 알을 산란한다.

얘기는 그렇게 끝나는데, 두 사람은 아마 지구, 아니 개복치를 바라보며 그 동안 지구에서발생한 불가사의한 실종의 비밀(산란)과 한국의 잭 필드 바지, 아니 자본주의는 왜 39,800원짜리(어리석은 믿음)인지 어렴풋이 알게 된 듯이 보인다.

 

3. Eleanor Rigby

The Beatles - Revolver
비틀즈(The Beatles) 노래/이엠아이(EMI)

그들은 출발하며 음악을 틀었다. 비틀즈의 Revolver」에 수록된 <Eleanor Rigby>. 우주선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할 즈음, 폴 매카트니가 노래한 소절은 다음과 같았다. Father McKenzie wiping the dirt from his hands as he walks from the grave. No one was saved. All the lonely people. Where do they all come from? All the lonely people. Where do they all belong? 그리고 버스는 날아올랐다.

(by slowtry from hottracks, september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