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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허클베리핀 환상...나의 환멸

환상과 환멸을 넘어, 그들이 왔다
(부제: 최고의 인디 밴드를 인터뷰하는 방법)

허클베리핀

허클베리핀 4집 - 환상...나의 환멸
허클베리핀 (Huckleberry Finn) 노래/Mnet Media

지난 4월 싱글 <그들이 온다>로 새 앨범을 예고했던, 그들이 왔다. 그들은 마침 인터뷰 전날 경향신문을 통해 발표된 음악 전문가 52인이 선정한 대중음악 100대 명반 리스트에 2장의 앨범을 랭크시킨 밴드이며, 그들을 이끌고 있는 이기용은 올 초 한국대중음악상이 선정한 올해의 앨범 Aresco」의 주인공이다.

 

빠샤에서
8 24. 9월호 잡지를 위한 인터뷰로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제 때 마감을 하려면 인터뷰를 마치고 백미터 달리기 하듯 원고를 넘겨야 한다. 허클베리핀을 만나 보니 그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아직 모든 곡의 믹싱이 마무리 되지 않은 데다, 제목도 결정을 못해 S1, H1 마치 신차 프로젝트명 같은 곡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9 만나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려는데, 잠시 믹싱 좀 하러 녹음실을 다녀 오겠다는 이기용(기타)을 말릴 엄두가 안 났다. 오히려 낯선 남자와 서먹하게 이야기를 나눌 위기에 처한 소영(보컬)이 그를 만류했지만 30분 안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며 그는 자리를 떴다.

제법 격식을 갖추고 이소영에게 던진 첫 질문은 현재 멤버 구성에 대한 것. 뻔한 질문 같지만 지난 4월 발표한 싱글 <그들이 온다> 음반에 드러머 김윤태가 사진 모델을 섰을 뿐 참여하지 않았고, <그들이 온다>의 모든 악기를 이기용이 연주하는 모습에서 혹시 밴드의 균열이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온다>를 형(이기용) 혼자 녹음한 것은 음악적인 판단이기도 했고, 그 분(김윤태)이 그 때 정말 바빴다. 박사과정 중에 있었는데, 논문 때문에 시간을 전혀 낼 수가 없었다.

건배. 우리는 음악계 최고의 고학력 밴드의 탄생(박사보다 높은 건 없으므로)과 변함없이 안녕한 허클베리핀을 위해 잔을 부딪혔다. 이 곳은 이기용과 이소영이 사장과 부사장으로 운영중인 (그밖의 직원은 전혀 없다) 빠샤, 아니 bar sha. 방금 부딪힌 잔에는 레드 비어와 레몬이 들어 있었다. 다른 가게의 생맥주보다 비싼 가격이지만, 내 기억에 처음 입력되는 낯선 음료다. 이 집의 특별한 킬러 컨텐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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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환멸, 환상환멸

아직 새 앨범 후반작업으로 바쁜 허클베리핀의 믹싱 중인 음원을 인터뷰 전 날 겨우 들어볼 수 있었다. “아직 믹싱이 끝나지 않았으니, 그 점을 감안해 달라는 당부와 함께 아이디와 비번을 얻었다. 이기용의 웹하드에는 아직 결정하지 못한 여러 버전의 음원이 뒤섞여 있었다. <해안선>, <H1(홍대의 밤)>, <S4>, <내달리는 사람들>, <알바트로스(shuffle)>, <그들도 우리처럼(비틀즈)>, <오 나비야(나비와 나)>, <환상환멸>, 이렇게 8곡에 싱글 음반으로 수록되었던 <그들이 온다>, <휘파람>, <낯선 두형제>가 더해져 4집을 이루게 된다.

활기찬 기타 리프와 후렴구의 <오 나비야>는 공연장을 한껏 고양시킬 멋진 곡이었다. 여러 버전이 함께 업로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밴드도 신경 쓰고 있는 곡임을 직감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라고 하며 이소영에게 타이틀 곡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자꾸 흔들리는데그런데 뮤직비디오 하시는 분이 <홍대의 밤>을 밀고 계시고, 밴드도 <나비와 나> <홍대의 밤> 사이에서 되게 많이 고민하고 있다.”

이소영은 허클베리핀의 2집부터 멤버가 되었다. 역사적인 데뷔 명반 「18일의 수요일」의 보컬은 현재 3호선 버터플라이의 멤버인 남상아였다. 이소영은 허클베리핀의 팬이었다. 남상아가 떠난 후, 오디션을 거쳐 보컬이 된 그녀는 전임자와 비슷한 중성적인 목소리다. 2집 「나를 닮은 사내」 당시 무대 위의 그녀는 상기되어 보였다. 눈을 꼭 감고 웅변대회에 나온 어린이처럼 순수한 느낌이었고 불안해 보였다. “에휴, 그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라는 그녀의 지금 모습은 전혀 달라졌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이 참 정직해 보이는 이소영은 허클베리핀에서 보낸 7년에 대해 나를 가난하게 만든 애증의 세월이었다고 회상하며, 새 앨범 작업이 늦어진 것은 내가 노래를 못 불러서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곡의 키(key)를 낮춘 경우도 있고, 일주일씩 같은 부분을 부른 경우도 있었다고도 한다. 그럼 목소리가 더 나빠지지 않냐고 물어보니, “그럼 거기서 그만 둬야죠라고. 인터뷰 자리에서 「환상.. 환멸」이란 앨범 타이틀을 알게 되었는데, 이어지는 뒷말로는 애증이 좋을 것 같았다.

인터뷰 하는 동안 술손님이 들어와 메뉴판을 보다가 밥을 먹고 오겠다며 다시 나갔다. 오늘처럼 장사가 안 되는 날은 처음이라고.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1시간도 넘어 이기용이 돌아왔고, 오자마자 작업한 CD를 걸었다. <그들이 온다>였다. 이기용이 미디로 찍은 날카로운 드럼 소리가 빠샤를 울렸다. 공격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미디를 이용한 것이라고 한다. 앨범을 위해 김윤태가 드럼 녹음을 따로 해두기도 했지만 결국 원래 버전으로 갈 모양이다. 곡이 끝나갈 무렵 원래 없던 트럼펫 소리가 나오는데 느낌이 좋다고 얘기해 주었다. 하지만 이소영너무 깬다. 볼륨 레벨을 좀 줄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다음 주에 음반을 발표한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이러고 있어도 되냐고 하니, 화요일까지만 마스터링을 하면 금요일에 음반을 내놓을 수 있다고 대답한다. 음반 재킷 디자인도 지금 진행중이라고. 거의 잡지 마감 수준이었다. 뭐든지 마감이 있어야 끝이 난다는데 동의하며 세 개의 잔을 부딪혔다.

이기용은 작사와 작곡을 거의 전담하는 허클베리핀의 설립자이자 리더다. 2005 11월에 발표한 솔로 앨범 「Aresco」로 2007년 초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올해의 모던록정도를 기대했는데, 너무 뜻밖이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시장에 타협하지 않으려고 독립 레이블을 직접 운영해 앨범을 발표하고 있지만, 인정 받는 것은 창작자에게 큰 활력소임에 틀림 없다. 그는 요즘 곡이 마구 샘솟아 오른다며 앞으로도 한 10장은 더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서둘러 돌아오느라 그랬는지, 믹싱 작업이 흥분되었던 건지 그는 약간 들 떠 있었다. 물어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번 앨범의 의미에 대해 말을 꺼냈다.

“4집의 차이점이 뭐냐 하면, 예전엔 약간 우울한 음악이 많이 있었는데, 그런 걸 과감히 빼고 스트레이트 하게 로큰롤로 가보자는 거였다. 이번에 바이올린을 한번도 안 썼다. 바이올린이 대변하는 서정적이고 쓸쓸한 느낌이 있지 않은가, 과감하게 빼고 드럼, 기타, 베이스로만 해봤다. 스왈로우(이기용의 솔로 프로젝트명)를 하다 보니, 허클베리핀을 할 때만은 좀더 록킹하게 하고 싶어졌다. 스왈로우를 통해 오히려 허클베리핀의 색깔이 분명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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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핀의 4집 「환상.. 환멸」은 허클베리핀을 분명하게 각인시킬 앨범이다. 그들을 기대하고 근심하는 지지자들에게는 안도를, 이들의 소문(저주받은 걸작, 김민기한대수를 잇는 싱어송라이터)과 음악에 무의식적으로 노출되어온 잠재적인 팬들에게는 각성의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었지만, 여러 해 살이 나비 허클베리핀은 이제 바다에 대해 잘 알게 되었고,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by
slowtry from hottracks, september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