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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그림쇼핑하신 커버

명화 열풍과 명 앨범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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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헌, '그림쇼핑, 공간사, 2006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고 늘상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신문에서, 이제는 미술품을 감상만 할 게 아니라 사서 보는 시대임을 선언하는 기사를 특집 연재하고 있다.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 미술품 살 돈과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례로 세계적인 부자들 사이에서 미술 투자가 유행인데, 부동산에 비해 미술품은 세금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돈이 많아야만 그림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국내 신인 작가들의 작품은 50만원 정도에 살 수 있는 것들이 흔하다. 그리고 싸다고 비지떡이겠는가? 마치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몇 만원 짜리 와인이 수백 만원의 고가 와인 못지 않은 맛을 내는 장면이 있듯이, 50만원 짜리라도 내 눈에 좋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게다가 실제로 수십 배로 가격이 뛰기도 한다. 국내 양대 미술품 경매회사인 K옥션 대표 김순응은 1980년대에 욱진 작가의 유화 세 점을 600 ~ 800만 원에 샀는데, 지금은 셋 다 1억 원이 됐다고 한다. 물론 전문가인 그도 열에 여덟은 실패였다고 고백하니, 잘 모르는 채로 섣불리 넘볼 분야는 아니다.

아무튼 이러한 부자들의 미술 수집 유행이 먼저인지, 일반인들의 교양으로서의 그림 감상이 먼저였는지 헷갈릴 정도로, 요즘 한국은 미술 마케팅, 그림 쇼핑 붐이다. 최근 광고계의 서양 회화 패러디는 이러한 세태를 잘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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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르의 목욕하는 여인이 ~~하고 있고, 고흐의 가셰 박사님이 핸드폰 통화중이시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에서 하나님과 아담도 핸드폰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유행과 무관하게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림도 사랑해 왔다. 바로 앨범 커버를 통해서!

가장 애용되는 방식은 명화에 대한 패러디다. 스쿨 오브 록의 열혈 선생님 잭 블랙이 운명의 피크라고 명명한 그림을 보라. 잭 블랙의 밴드 터네이셔스 D(Tenacious D)가 코믹하지만 본격적인 메틀 사운드를 선사하듯이 앨범 커버 역시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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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acious D / The Pick Of Destiny (2006)


패러디와는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원작과 유사한 이미지로 표현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는 방법이 바로 오마주. 패러디가 원작의 귄위를 훼손하여 재미를 준다면 오마주는 존경을 표한다. 조운 바에즈(Joan Baez) 1969년 작 「David’s Album」은 로댕의 걸작인 생각하는 사람을 연상시키는 일러스트를 커버에 담았는데, 정치적인 노래와 행동으로 많은 고민을 떠안고 있었던 조운 바에즈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딱히 로댕에 대한 존경의 의미는 아니지만, 작품의 의미를 진지하게 차용하고 있으니 패러디 하고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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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 Baez / David’s Album (1969)


그림을 그대로 따온 앨범 커버도 있는데, 딥 퍼플의 걸작 앨범 「Deep Purple」은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1504년에 그린 작품의 일부를 그대로 커버로 사용했다. 이런 고전 작품을 그대로 사용할 경우 커버를 위한 사진이나 일러스트 비용을 절약하고 별도의 저작권료도 지불할 필요가 없으므로 경제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이런 식의 앨범 커버가 심심치 않다. 최근 국내에서 35만 명 관객을 동원한 르네 마그리트, 역시 한국 전시를 연 바 있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같은 경우 앨범 커버의 단골 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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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Purple / Deep Purple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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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Beck / Beck-Ola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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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 Industry / Insects (1992)

 

찾아보면 기존 미술 작품을 패러디, 오마주, 혹은 그대로 따온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 자리에 다 소개할 수는 없으니 앞으로는 좀더 관심을 가져 보면 어떨까? 이제는 앨범 한 장 사면서 그림 한 점 산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까짓 지폐 한두 장 덜 아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한다. 꼭 명화에 기대지 않더라도, 좋은 앨범 커버는 그 자체로 명화 못지 않은 매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최근 마돈나의 1992년 작 Erotica」와 비슷한 나타샤 베딩필드의 앨범 커버를 보면서 세월을 뛰어넘어 영감을 주는 앨범 커버라면 그것이 곧 명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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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onna / Erotica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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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asha Bedingfield / N.B. (2007)

 

끝 (by slowtry / original release from mnet.com 2007.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