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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animals] 비틀, 돼지, 새, 개, 너구리, 해마




헤이 비틀!


“작은 꿀꿀이들이 더러운 땅바닥에서 기어다니는 걸 본 적이 있나요?” 


조지 해리슨이 지은 <Piggies>는 그가 완전 채식주의자가 되고 1년 뒤에 녹음해 『The Beatles』(1968) , 일명 ‘화이트 앨범’에 수록한 곡이다. 나는 제주도에서 바닷가에 산책 나온 돼지를 본적이 있다. 밀려오는 파도와 장난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녀석의 모습은 매우 영리하고 어떤 면에선 사람과 가장 닮았다는 과학자들의 진술 그대로였다. 그리고 돼지는 사실 깨끗한 환경을 무척 좋아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조지 해리슨은 더럽고 탐욕스러운 금융 자본을 비판하기 위해 돼지라는 매우 손쉬운 비유를 선택했고, 이 곡에 실제 사용한 ‘꿀꿀’ 사운드는 더럽기 짝이 없는 돼지 우리에서 녹음되었을 것이다.


<Piggies>는 화이트 앨범의 동물 3연작 중 하나로 앞뒤에 <Blackbird>와 <Rocky Raccoon>이 함께한다. <Blackbird>는 사회비판적이며 클래시컬한 곡이다(<Piggies> 역시 그렇다). 당시 고조되고 있던 흑인 민권운동이 모티브가 된 곡이라는 데, 이렇게 신비로운 유럽 동화 같은 분위기로 그 같은 의사 전달이 되었을지는 의문이다. 어릴 때 연습했던 바흐의 <류트 조곡>으로 손 익은 주법이 기타 편곡에 활용되었으니 흑인과의 연관성은 작자 폴 매카트니의 설명 밖에서는 요원할 뿐이다. 3연작의 대미는 북미너구리(raccoon)다. 앞선 두 곡이 실제 동물들의 소리가 더빙(화이트 앨범은 비틀즈 최초의 8트랙 레코딩)된 동물 이야기임에 반해 <Rocky Raccoon>은 그냥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 이야기다. 원래 로키 사순(Sasoon)이라는 남자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이 곡은, 폴 매카트니가 좀 더 미국적이라는 이유로 라쿤이라 이름 붙이고 카우보이 같은 억양을 흉내내어 랩처럼 빠르게 사설을 풀어놓는다. 


“다코타의 깊은 산 언덕 어딘가에 로키 라쿤이라는 한 젊은이가 살았지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여자가 다른 남자랑 도망갔지.” 


기막힌 하모니카 연주는 존 레넌의 솜씨로, 비틀즈의 레코딩에서는 이 것이 마지막이었다.


불쌍한 청년 사순을 라쿤으로 바꾼 폴 매카트니 역시 동물 의인화의 희생자가 되는데, 다름아닌 『The Beatles』 앨범에서다. 존 레넌이 쓰고 부른 <Glass Onion>에서 폴 매카트니는 해마(walrus)가 된다. “내가 해마와 나에 대해 말한 적이 있지. 자, 여기 또 다른 단서가 하나 있다. 해마는 폴이었다.” 존 레넌은 예전에 발표한 <I’m The Walrus>를 새 노래에 언급하며 무슨 새로운 사실인 양 장난치고 있다. <Glass Onion>은 익히 알려진 루머인 폴 매카트니 사망설의 수많은 증거 중 하나로 인용되곤 한다. 1965년 교통사고로 이미 죽었다는 폴 매카트니가 얼마 전 새 장가까지 들고 가장 장수할 것 같은 예감마저 드는 것이, 이제와 아이러니라고 할까.



존 레넌의 베스트 동물 트랙은 단연 <Hey Bulldog>이다. 비틀즈가 만든 곡 중 가장 빨리 만들어진 노래라고 하는 이 곡은 스튜디오에서 존 레넌이 떠올린 노래를 대충 설명하자 당시 함께 있던 스탭들도 끼어 즉흥적으로 가사가 만들어졌다. 애당초 없었던 불독이란 말은 ‘bullfrog’라는 단어를 보고 폴 매카트니가 장난으로 개 짖는 소리를 내자 곧 모두 거기에 동참해 개판이 되었고, 결국 제목이 결정되었다. 정교하게 녹음된 동물소리를 더빙한 다른 동물 트랙들과 달리 이 곡에서 비틀즈는 직접 불독이 된다. 개소리를 들어도 역시 비틀즈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분야를 막론하는 이들의 천재성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by slow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