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ary

[animals] 황금 물고기





"라일라는 알제리 사막의 먼지에 손을 올려놓으며 

잃어버린 어머니의 손을 만진다."


온몸이 온통 까만 물고기가 있다고 치자. 눈을 깜박일 때 하얀 눈만이 빛을 내는 물고기가 있다고 치자.


빛이 없는 깊은 바다 속 그 누구도 그 고기를 알아보는 이 없어 어둠과 더불어 외로웠지만 물고기는

바다의 막막한 자유가 싫지 않았다. 친구도 없이 헤치려는 적에게도 눈에 띄지 않으며 모든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살아가던 어느 날, 모든 물고기들이 가끔 그러듯 비늘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그 아래에 돋아난 새 비늘은 반짝였다. 바다는 어둡고 그의 피부는 검어 비늘은 더욱 반짝여 보였다. 동굴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늙은 문어는 언제나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너의 자유가 너의 오랜 침묵을

단단하게 해서 마침내 진주를 만들었구나. 너는 이제 이 바다에서 가장 빛나는 물고기로 다른 모든

물고기들의 부러움을 사게 될 거다.” 그의 몸엔 은빛 비늘이 돋아났고 그의 마음엔 전에 없던 욕망이

자랐다.


이후 그 한때 까맣던 물고기 이야기는 마르쿠스 피터스라는 스위스 동화작가가 쓴 『무지개 물고기』

로 널리 알려진다. 은빛 비늘을 여럿 달고 자신의 빛을 남 앞에 뽐내고 싶었지만 너무 눈부신 광채는

짙은 어둠처럼 그를 소외시켰다. “나는 정말로 예쁘잖아요. 그런데 왜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요?” 늙은 문어는 무지개 물고기에게 조언했다. “네 비늘을 다른 물고기들에게 하나씩 나눠줘라.

그럼, 넌 바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고기가 되진 못하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질 거다.” 무지개

물고기는 빛나는 비늘이 없이는 행복하게 살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질 거라는

말에 비늘을 나눠주기로 했다.


하지만 빛나는 물고기에 대한 다른 이야기도 있다. 르 클레지오라는 프랑스 작가는 『황금 물고기』

라는 제목의 소설을 써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다. 물고기 이야기의 인간 우화라고나 할까. 황금

물고기는 ‘라일라’라는 알제리 흑인 소녀로 태어나 유년기에 유괴당해 부잣집 할머니의 식모가

된다. 기력이 쇠해가는 할머니의 유일한 벗이자 손녀이자, 그렇지만 식모였던 라일라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집에서 쫓겨나듯 탈출한다. 할머니의 저택과 너무나 대조적인 거리는 더럽고 낯설고

위험했지만 매력적이었다. 그런 게 자유였다.


한쪽 귀가 먼 고아에 불과했던 소녀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자신만의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까맣기만 했던 그녀는 아름다웠고 춤을 출 줄 알았고 노래를 빠르게 배워나갔다. 라일라는 알제리를 떠나

프랑스로 미국으로 헤엄쳐갔다. 세상은 거칠었기 때문에 그녀의 검은 비늘은 하나 둘 벗겨졌다.

라일라가 만난 사람의 절반은 그녀를 겁탈하려 했고 절반은 자유를 빼앗으려 했다. 그녀는 자신의

무엇도 빼앗기지 않기로 했고 자신을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았다. 비늘을 빼앗기고 얻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단지 위안일 뿐이라면.


황금 물고기를 구원한 것은 음악이다. 『황금 물고기』 라일라의 표류는 흑인음악과 더불어 조난의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나곤 한다. 지미 헨드릭스, 빌리 할리데이, 그리고 니나 시몬의 <검은색은 내

진정한 연인의 머리카락 색이네>. 미국으로 유럽으로 남아메리카로 전 세계로 이산한 흑인음악이

아프리카라는 인력에 새삼 이끌려 되돌아 온 것처럼 『황금 물고기』는 알제리로 돌아간다. “바닷물에 손을 담그면 물살을 거슬러올라가 어느 강의 물을 만지게 되는 것이다.” 라일라는 알제리 사막의

먼지에 손을 올려놓으며 잃어버린 어머니의 손을 만진다.


어머니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런 것일 거다. 

블루스 고전을 부르는 니나 시몬(『Nina Simone Sings The Blues』)을 들으며 나는 아마도 느낀다.


Nina Simone - Nina Simone Sings The Blues (Expanded Edition) - 10점
니나 사이몬 (Nina Simone) 노래/소니뮤직(SonyMusic)

카페인처럼 중독성이 있어서 계속 듣는다.


무지개 물고기 - 8점
마르쿠스 피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시공주니어


무지개 물고기가 자신만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다른 이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소망을

이룰 수는 없었을까? 다른 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


황금 물고기 (반양장) - 10점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문학동네


라일라는 스밀라 만큼이나 매력적인 여자다.

무지개 물고기와 달리, 그녀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늘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한다.

늘 옳았던 건 아니지만, 나는 언제나 라일라를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