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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동네음악2_혜화동(한강,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어릴 적 놀던 골목이 이 세상 어디엔가 그대로 남아 있는 청년. 그 골목에서 오래 전의 친구를 만나러 전철을 타고 가는 노래. 들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골목 끝에서 친구가 달려오는 대목에선 늘 마음이 흔들렸다.
한강, ‘혜화동’ -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중에서



한강
 한강 작가의 데뷔작이던 '여수의 사랑'은 너무나 슬프고 애처로워서 읽을 당시 괴롭고 힘빠져서 고생했던 것이 기억난다, 라는 글을 네이버에 '한강 작가'라고 검색하면 제일 처음 보게 된다. 한강의 이름으로 나온 가장 최근 책인 『채식주의자』를 읽기 전 그 '너무나 슬프고 애처로운' 느낌이 들까봐 쉽게 집어들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곧 늪에 빠지듯 한강에 빠지게 되고, 주말 하루를 '채식주의자'에 바치게 되었다.
소설집 '채식주의자'는 표제작에 이어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몽고반점'과 '나무 불꽃'으로 연결되는 3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날 꿈을 꾼 이후 채식을 하게 되는 여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작가의 초기작인 '내 여자의 열매'를 발전시킨 것 같은 식물 모티브의 작품이다. ‘내 여자의 열매’에서도, ‘채식주의자’에서도 여자가 식물이 되어가는 데에는 남편과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이 관련을 맺고 있다. 그 여자들은 억울하고 화가 날 때 대부분의 여자들처럼 수다를 떨거나 바가지를 긁는 대신 신화처럼 변신 이야기를 쓴다. 그건 작가가 믿는 여성성이 궁극적으로 세상을 구원할 거란 갈망과 믿음 때문일 것이다. ‘채식주의자’에서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라고 드러냈듯이.
신경숙도 그렇지만 가슴으로 썼다고 느껴지는 작가의 경우, 작품과 그의 삶을 동일시하게 되기 마련인데(공지영의 경우 다른 이유로 작품-삶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곤 했지만), 한강은 채식주의자는 아니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막막한 단절감과 고통을 실제 느꼈던 것 같다. 한강이 처음으로 발표한 산문집이자 음반 『가만 가만 부르는 노래』에서 그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거의 글쓰기 중독에 가까웠던 십 년간의 습관을 접고 나면 무서운 공허감이 밀려오곤 했다”는 고백을 한강의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에서 읽을 수 있다. 그 “바위처럼 무겁고 단단하던” 시절 그녀에게는 아이가 있었고, 그리고 비틀즈의 <Let It Be>가 있었다 한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는 작가의 인생에 얽힌 노래 이야기를 엮고 있으며, 또한 작가의 데뷔 앨범이기도 하다. 한강은 작품 속에 밴드 이름이나 노래 가사를 인용하는 다른 70년대 생 음악 마니아 작가들과 달리, 음악가 작가가 된 것이다. 피아노를 사줄 형편이 못 되는 부모 슬하에서 자랐지만, 문방구점에서 10원을 주고 산 종이 피아노 연주 실력을 바탕으로 가수 데뷔 성공!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에는 작가의 영혼에 자리한 <Let It Be>, <보리수>, <행진> 같은 노래 이야기와, 제목처럼 가만가만 부른 작가의 노래가 CD로 담겨 있다.



혜화동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동물원의 <혜화동>은 잊고 지내던 친구처럼 들으면 왠지 반가우면서도 미안한, 노래다. 그 때의 골목, 그 때의 나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왔기에.

by slow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