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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Shine on Virginia

'호밀 밭의 파수꾼'과 콜렉티브 소울의 CD를 가지고 있는 나는 언제 FBI가 들이닥쳐 내 집을 수색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내 뇌를 열어보거나 최소한 정신감정을 해볼 것이다. 적어도 버지니아 지역 라디오에서 콜렉티브 소울(Collective Soul) 'Shine'이라는 곡이 방송되기 전까지 이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라는

'
오바'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런 걱정을 하고 있다.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Shine'이란 노래가 도대체 어쨌길래
?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지음/민음사


 '호밀밭의 파수꾼'은 타임지가 세계 100대 영문학 중 하나로 선정한 20세기의 고전이다. 하지만 출간 당시에는 청소년 금지도서였던 문제적인 책이었다. 홀든 콜필드라는 16세 소년이 사립학교에서 퇴학 당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23일간의 여정이 소설의 뼈대다. 독자는 정신병원에서 요양 중인 그의 독백을 통해 이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는데, 표면적으로는 낙제생에 왕따인 그가 기성 사회의 허영과 위선을 견디지 못하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겉으로 보아 정상이 아닌 자에게 공감을 느끼게 되고 사실은 정상적이라고 여겼던 사회가 비정상임을 각성시키는 것이 이 작품의 탁월한 점이다
.

 
영화 '컨스피러시'(멜 깁슨과 줄리아 로버츠 주연)에는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 "케네디 암살범인 리 하비 오스왈드의 집에서도 나왔고, 역대 다른 암살범들 집에서도 발견되었다"는 대사가 나온다. 주인공 제리 플레쳐(멜 깁슨)는 음모 이론(Conspiracy Theory)을 지껄여 대는 택시 운전사로 미치광이 취급을 받는데, 그가 서점에 갈 때마다 사 모으는 책이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의 애호가로 알려진 사람들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영화에 연출된 부분이다.

영화 대사처럼 케네디 암살범도 자주 인용되지만 누구보다 존 레논 암살범 마크 채프먼의 경우 존 레논 총격 후 현장에서 이 책을 꺼내 읽었고 경찰에 연행된 후 "나의 대부분은 이 책의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이며 나머지는 악마일 것"이라며 모든 사람들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Hints Allegations & Things Left Unsaid
컬렉티브 소울 (Collective Soul) 노래/워너뮤직코리아(WEA)

 'Shine'이라는 곡은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에 심취한 사람이라면 모르지 않을 히트곡이자 명곡이다얼터너티브 록밴드  콜렉티브 소울의 1994년 작 데뷔 앨범인 「Hints, Allegations, And Things Left Unsaid」에 수록되어 빌보드 차트 11위에 올랐고, 앨범은 2백만 장의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Shine'은 기타 치는 사람이라면 '한번 쳐볼까?'싶은 만만하지만 매력 있는 기타 리프(riff. 반복악절)가 있고, 당시 유행하던 펄 잼(Pearl Jam)의 에디 베더풍의 걸걸(칼칼?)한 보컬에, 게다가 가사도 곱씹어 볼 만한 멋진 곡이었다
.

Give me a word
Give me a sign
Show me where to look
Tell me what will I find
Lay me on the ground
Fly me in the sky
Show me where to look
Tell me what will I find
Oh, heaven let your light shine down

 
가사를 거칠게 나마 번역해 보면 "내게 말씀을 주시고, 저를 인도해 주세요. 제가 어디를 보아야 하는지도 보여주시고요. , 하늘이시여 당신의 빛을 내려주소서." 거의 성가 수준의 보람찬 가사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노래는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의 조승희가 즐겨 들었던 노래로 알려져 10 수년 만에 다시 유명해졌다. 룸메이트의 증언에 따르면 조승희는 이 노래의 가사를 기숙사 벽에 적어놓기도 했고, 아침마다 이 노래를 듣고 잠에서 깰 정도였다고 한다
.

 
요즘 영어권 뉴스 사이트에서 'Collective Soul'을 검색하면 'Seung-hui Cho'가 함께 검색되기 마련이다. 기숙사 친구들의 증언, 그리고 잔혹한 범죄자들이 즐겨 들었던 노래들의 리스트가 함께 공개된다. 그런 기사들이 거론하는 오지 오스본, 비틀즈, 마릴린 맨슨 같은 이들과 살인자들의 이름을 이 자리에서 다시 인용하는 것은 부질 없을 뿐 아니라 선정적인 일일 뿐이다.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이었던 만큼 기사에 많은 댓글이 달렸다. 제일 먼저 댓글을 단 사람은 자신이 정말 좋아 하는 음악인데 이 음악과 이번 사건은 전혀 관계 없으니 관련시키지 말자고 한다. 맞는 말이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가장 나중에 달린 댓글은 '이라크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데, 테러범들의 경우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버지니아 공대 사건보다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는 의견이었다. 의미 있는 말이다.

 
이런 큰 사건이나 사회적인 위기(재난, 전쟁, 빈곤)가 닥쳤을 때, 음악이나 듣고 앉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Shine'이란 아름다운 노래가 그 동안 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에게 위안이 되고 용기를 주었을까? 아마 수많은 사람을 살렸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
'호밭의 파수꾼'이 방황하는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뜨거운 카타르시스의 '빛을 내려주었던 것처럼. (by slow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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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넷(mnet.com)에 쓴 글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베스트셀러답게 알라딘에 310개의 독자 리뷰가 붙어 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인가 보다.
 콜렉티브 소울은 나로서도 참 오랜만인데, 'Shine'이란 곡은 좋긴 한데, 발표 당시 목소리에 이펙트를 걸어 장난스럽게 삽입되는 부분이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을 닮았다고 하여 상업적인 따라쟁이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들이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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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ve soul pic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