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선생님을 뵙고 왔다.
나 같은 사람이 그분을 인터뷰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하라니까, 지나치게 마다하는 것도 월급 받는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으니...
5월 13일 선생이 계신 아치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읽은 책이 친절한 복희씨밖에 없어 그 얘기만 해도 될까...
두려워 하며.
작가의 집은 아치울이라는 예쁜 이름의 마을에 있다. 인공적인 소리라곤
집짓는 인부의 망치질 소리뿐인 자연 속에 파묻힌 마을이 서울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근작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 수록 마지막 단편 ‘그래도
헤피엔드’의 배경이 서울 근교의 전원마을이기도 하다. 등단작 <나목>부터 가장 최근 작품까지, 어떤 작가보다 개인의 체험이 작품의 원동력이 된 이가
“사실 쓰는 것은 자신에게 격려가 되고 위안이 됩니다. 왜 작가 아니라도 일을 놓으면 금세 기력이 떨어진다고 하잖아요. 작가는 꼭 써야 할 무엇이 있다면 중병이 있더라도 그건 끝내겠다는, 그런 면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까이 지낸 박경리 선생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만나면 뭘 쓰고 있다, 쓰고 싶다, 늘 그런 얘기를 하셨으니까요.”
지난 해 호암상 수상자 이청준 작가를 비롯해 원로 작가들의 작품이 일제히 발표된 것을 기점으로 일종의 한국문학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연애경험은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떨림의 감정은 비슷하다고 봐요. 나는 리얼리즘 작가라고 생각해요. <그 남자의 집>은 제가 살았던 시대의 연애 이야기지요. 요즘 아이들의 연애의 장소, 소도구들에 대해 들어서 알더라도, 그걸 나이 든 사람의 입장에서 쓰는 것이지 요즘 아이들의 이야기는 아니죠. 요즘 내 작품의 주요 독자가 2, 30대라고 하는데, 그 것은 내 문장의 힘과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싱싱한 감수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의 결과입니다. 사회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현대 작가들을 읽고, 세계문학의 흐름과도 호흡을 같이 하며, 손자 손녀와도 대화하는 그런… 내가 몸 담고 있는 현실세계에 관심과 애정을 늦추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노인네 얘기를 쓰더라도 진부하지 않은 문장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2000년대
“요즘은 <현대문학>에 매달 산문을 연재하고 있어요. 개인의 경험과 문학적 사유를 보태서 쓰는 글이에요. 이달에는 가장 충격으로 다가 온 일이 박경리 선생님 일이었으니까….”
작가는 월간 <현대문학>에 지난 2월 ‘나는 다만 바퀴 없는 이들의 편이다’를 시작으로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불타 버린 남대문에 대한 안타까움, 일상에 대한 생각 등을 소재로 한 연재 에세이에서 우리는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님을 만나게 될 것 같다.
아치울로
“박경리 선생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살아낸다는 것 자체가 진리’라고. 먹을 것이 없어서 하는 도둑질은 숙연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찮은 미물이지만 그 살아내는 모습을 보면, 그것 자체가 진리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좋은 문학이란 살아내게 하는 힘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일시적인 오락과는 다른 것이지요. 종교는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지만 문학은 저항입니다. 처음 영세를 받을 때 이제 글을 못쓰게 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했어요. 그러나 문학과 종교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삶을 반성하게 하는 기능이지요. 기도하듯 소설을 통해 삶의 이지러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