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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보사노바, 곡조가 어긋난 사랑 노래

김현철 같은 팝 가수의 <춘천 가는 기차>에서, 클래지콰이의 일렉트로니카 라운지 <Novabossa>, 모던록 밴드 롤러 코스터의 <Close To You>에서도 보사노바의 기타 연주와 나긋한 보컬을 인용하고 있다. 브라질 음악이지만 보사노바 전문 가수는 리사 오노처럼 일본에도 있다. 어디에나 어울리는 감미료처럼 보사노바는 장르와 지역의 경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렇듯 지구라는 월드의 어디에나 있는 음악이지만 정작 월드뮤직이라 말하기엔 조금 쑥스러워진 음악이 보사노바다.

보사노바는 브라질에서 태어났다. 브라질의 대표적인 음악이자 문화인 삼바가 열정이라면 보사노바는 냉정일 텐데, 정반대의 정서지만 사실 보사노바는 삼바에서 나왔다. 요란하진 않지만 구조적으로 보사노바 리듬은 삼바처럼 앞 박에 강세가 있는 2박자라는 점에서 같다. 물론 보사노바는 단순히 삼바를 자분자분하게 연주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멜로디와 리듬이 미묘하게 불일치하면서 생겨나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있어야 비로소 그 음악을 보사노바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말로는 어렵지만 보사노바란 무엇인지 절묘하게 표현한 노래는 있다. 아름다운 <Desafinado>인데, 의외로 날카로운 가사를 지녔다.


나의 작곡법이 반음악적이라고 말한다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이것이 보사노바라고,

이것은 자연스러움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군요.

당신들은 모르고 있지만,

음치인 나에게도 감정이 있답니다.

나의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로 당신을 찍었더니

무례함이 현상되었더군요.

from <Desafinado> by Antonio Carlos Jobim & Newton Mdndoncao


새로운 음악 스타일인 보사노바에 대한 비판이 일자 당사자들(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과 뉴튼 멘돈사웅)이 음악을 통해 답변한 것이다. 아름답기로는 사실 영어 번안 가사가 더 낫다.


사랑이란 끝이 없는 멜로디 같아.

시인은 교향곡에 비유했다지.

교향곡은 달빛이 지휘를 하지.

하지만 우리의 사랑 노래는 곡조가 조금 어긋났어.


엘라 피츠 제럴드가 부르기도 한 이 영어 가사에서처럼 ‘곡조가 조금 어긋난 사랑 노래’ 정도가 보사노바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인 것 같다.

보사노바 특유의 스타일을 고안한 사람은 조앙 질베르투라고 한다. 50년대 중반 브라질 리우에서 무명 뮤지션 생활을 하던 그는 생활비가 모자라 동료들의 집에 기식하기 일쑤였는데, 주위 눈치도 약간 보며 거실이나 화장실 같은 곳에 앉아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그의 독특한 스타일이 몇몇 뮤지션들의 눈길을 끌었다.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은 조앙의 스타일을 적용해 <Chega De Saudede>라는 곡을 작곡했다. 비니시우 지 모라에스가 가사를 써서 1958년에 발표한 이곡은 최초의 보사노바 레코딩이다.

우연히 태어난 보사노바는 또 한번 우연과 만나게 된다. 이번엔 남의 집 거실이 (혹은 화장실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흑인 오르페’의 음악을 맡아 명성을 얻게 된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과 조앙 질베르투는 브라질 여행 중 보사노바에 꽂힌 재즈 색소포니스트 스턴 게츠와 함께 앨범을 녹음하기 위해 미국에 와 있었다. 영어 통역을 위해 조앙의 아내 아스트러드도 동행하게 되었는데, 노래 가사의 일부를 영어로 바꿔보자는 제작자 측의 갑작스런 주문에 그녀가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었다.

아스트러드 질베르투가 얼떨결에 노래한 <The Girl From Ipanema>는 빌보드 차트 5위의 히트곡이 되었다.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프로 보컬리스트로 연습에 매진한 적 없는 그녀 역시 한 때 ‘Desafinado’(음치)라는 혹평을 들어야 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후대 보사노바 여성 싱어들은 그녀의 백치미와 여유 있는 태도를 교과서 삼아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