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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편집증

방송인 정지영의 '마시멜로 이야기'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관계된 모든 세상사가 그러하듯 출판계에도 문제점이 있다.
지난 해 연말에는 사재기 파문이 일었고, 올 연말에는 대필 파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좀더 시간이 지나면 생산적인 논의가 늘어날 것이고, 출판계 입장에서도 결국 진보를 위한 아픔의 시간이었다며 느긋하게 지난날을 회상할 날이 오리라 믿어의심치 않지만,

아직은 "마녀사냥"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더이상의 기사나 특히 댓글은 읽고 싶지 않다.

三思一言이라는 말이 있는데, 한마디 하려면 한번쯤 생각해 보고 하라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는 계기가 될 만한 글을 소개한다.

반세기를 거치는 동안 레코드 앨범은 대중문화의 주요 대상이자 경험으로 자리잡아왔다. 싱글이 잡지나 텔레비전 쇼 같은 것이라면 앨범은 책이나 영화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어느 정도의 비중과 영향력을 지닌다. '대부'나 'Thriller',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모두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뮤지션이 앨범을 만드는 일이란 작가나 영화감독이 직면하는 그것과 똑같은 도전을 의미한다. 모두 뛰어난 능력을 요구하고, 부와 명성에 대한 야망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종종 여러 사람이 협력한 결과물이지만 앨범에는 전체적인 책임을 지는 한 사람-반드시 리드 싱어나 리드 플레이어인 것은 아니다-이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대개는) 제작과정을 감독하는 프로듀서가 있다. 책과 영화처럼 앨범도 익숙한 형식을 취하거나 잘 알려진 장르로 쉽게 분류할 수도 있으며, 그러면서도 신선한 내용과 독창적인 스타일로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마이클 라이든,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장', 2006 中)


자신이 쓴 글의 토씨 하나 구둣점 하나 고치지 못하게 하는 작가도 있다. 그러나 책도 제작 시스템을 갖춘 대중문화 콘텐츠의 하나이며, 그 시스템은 점점 정교해지고 분업화 되어가고 있다. 책이란 것은 개인적인 노작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할 수는 있겠지만, 여러사람의 힘이 적절한 시스템 속에서 발휘되어 좋은 결과를 내는 일이 어찌 공업이나 농업만의 일이 겠는가? 같은 대중문화 영역의 영화가 여러 사람의 노작임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데, 아직 음악의 경우에도 그렇지만(싱어송라이터만을 예술가로 대우하는 관행) 책의 경우에도 실제 제작 환경에 대한 일반의 이해가 부족한 편이다.

내 주변에는 출판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몇 있다. 원고를 교정 보고, 디자인 컨셉트를 조율하고, 마케팅 계획을 수립하고, 언론과 서점 홍보를 위해 애정과 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영화판에서 밤을 지새우는 스탭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스탭들이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면서 그토록 바라는 것이 좋은 영화이듯, 편집자는 좋은 책을 기대한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빈 팝콘상자를 치우는 시간 그들의 이름이 까만 화면 위로 하얗게 찍혀 올라간다. 편집자도 좋은 책 뒤에 작은 이름 하나 남길 뿐이다. 자취가 작다고 해서 역할이 작지는 않다. 저자는 창작자고 편집자는 잡부인 것이 아니다. 또한 편집자의 노력이 돈만을 위한, 베스트셀러만을 노린 것도 아니다.

신문사에는 '데스크'라는 개념이 있다. 아마 편집장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편집장은 기자의 기사를 검토하여 '편집'한다. 편집이란 두 글자는 중요도에 따른 지면 결정과 제목 선정 혹은 수정, 발문, 원고 첨삭 등의 활동을 의미한다. 아닌가? (어떤 기자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책이란 제품이자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좀더 투명하게 알려지고 공개된다면 지금의 오바 현상이 되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정당한 편집자의 활동, 제작 과정까지 대필이니 대리번역이나 하는 말로 호도되어서는 않된다. 그러나 그럴 조짐도 보이고, 그래서 조심하는 분위기다. (식상한 얘기지만, 이번 일로 모든 출판인이 매도되어서는 안되며 그들의 열의를 꺽어서도 안된다는... ㅡ.ㅡ;;)

오바의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 아닐까? 앞서 소개한 '명반 1001장' 책이 재판에 들어가면서 표지에 공동 번역자 이름 전원을 넣겠다는 것이다.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
로버트 다이머리 지음, 한경석 옮김/마로니에북스

(좋은 책이다. 아무튼 표지를 보면 현재 '한경석 외 역'이라고 되어 있는데, 공동 번역자 6인의 이름을 다 인쇄하는 것으로 교정해 2쇄를 찍기로 했다는 최신 내부 정보. 공동 번역자의 이름은 모두 책 날개에 적혀 있고, 그들은 많지는 않지만 약속한 금액을 지불 받았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었다는 말.)

참고로 一事一言은 하나의 사물에 하나의 말이라는 뜻으로, 하나의 대상을 나타내는 가장 정확한 말을 이르는 말(국립국어원)이며 조선일보 칼럼명이기도 하다. 쓰다보니 삼사일언, 일사일언은 커녕 중언부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