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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벤 폴즈 'Supersunnyspeedgraphic'

Ben Folds - Supersunnyspeedgraphic, The LP
벤 폴즈 (Ben Folds) 노래/소니비엠지(SonyBMG)

'Brick'은 서글픈 멜로디, 그리고 그보다 더 우울한 자기 고백적 가사로 빌보드 차트 19위에 올랐다. 그리 높은 순위는 아니지만 앨범은 꾸준히 사랑받아 앨범 발표 뒤 1년쯤 후 미국에서 골드를 기록했고, 한국에서도 아름다운 발라드를 남긴 90년대 밴드로 벤 폴즈 파이브(Ben Folds Five)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벽돌(Shes a brick and Im drowning slowly)이라는 가사가 알쏭달쏭했던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이 곡은 크리스마스 다음날 새벽 6에 일어나 여자친구와 함께 아이를 지우러 가는 우울한 광경을 문학적으로 묘사한 곡이다. 이런 발라드는 벤 폴즈 파이브에게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고, 별로 히트하리라 기대한 곡도 아니었다고 한다. 침실에 마이크 서넛 놓고 라이브로 녹음한 유일한 곡이었다.

여기 모인 12곡의 노래는 예전 EP나 사운드트랙에서 고른 곡들로 정규 작업이 아니라 비정규작품들이다. 그래서인지 침실에서 부스스한 얼굴로 녹음한 'Brick'처럼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래서 더 좋은 것 같다.

Supersunnyspeedgraphic, The LP」는 인터넷으로만 판매해 팬과 컬렉터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의 3부작 EP - Speed Graphic, Sunny 16, Super D(와 사운드트랙 등)에서 선곡한 앨범이다. 일본 팝 가수처럼 싱글 모아 앨범도 아니고, EP 모아 LP는 비틀즈의 페퍼상사이래 영미 뮤지션들에게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만 공개되기도 했던 그의 EP들이 그리 익숙하지는 않을 것이며, Supersunnyspeedgraphic, The LP」로 묶으면서 편곡을 새로 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 음반은 2001년의 솔로 데뷔 앨범과 지난 해 발표한 최근 앨범 「Songs For Silverman(2005) 사이의 기록임과 동시에 내년에 나올 새 앨범의 전초전이기도 하다.

from Speed Graphic(2003)

2003년과 2004년 사이에 발표한 석 장의 EP 시리즈 중 첫 작품이 「Speed Graphic」이다. EP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곡은 단연 큐어(The Cure)의 명곡 'In Between Days' 리메이크였다. 피아노, 베이스, 드럼의 간결한 벤 폴즈 특유의 구성으로 이번 LP의 문을 상쾌하게 여는 첫 곡이 되었다. Speed Graphic」에서는 <In Between Days> <Dog>이 선택되었는데, 서정적인 발라드 <Give Judy My Notice>는 이미 지난 앨범 「Songs For Silverman」을 통해 화려한 편곡으로 새로 태어난 바 있어 빠졌다.


from
Sunny 16(2003)

벤 폴즈가 한정판 EP로 발표한다는 것이 바보 같이 느껴질 정도로 애착을 가진 작품이 바로 「Sunny 16」이었다. 5곡 중 리메이크 곡인 <Songs Of Love>(디바인 코미디의 1996년 작 「Casanova」 수록곡)를 비롯해 <There’s Always Someone Cooler Than You>, <Learn To Live With What You Are>, <All U Can Eat> 4곡을 수록해 바보짓을 충분히 만회했다.

<All U Can Eat>은 정치적인 주제를 전달하는 곡으로 라이브를 통해 They Give No Fuck(그들은 상관치 않는다)이란 제목으로 소개하던 곡이었다. 소비를 즐길 줄만 아는 미국인들에게 기아로 굶주리고 전쟁으로 고통받는 세계에 관심을 가지라고 충고한다(원하는 만큼 소비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풍족하기만 하면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게다가 미국은 전쟁의 당사자가 아니던가?

정치적 목소리를 드높이는 벤 폴즈의 모습이 흔한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부족하고 약한 사람의 입장으로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익숙하다. <There’s Always Someone Cooler Than You>(“나를 깔보며 네 자신이 크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다만, 너보다 잘난 놈은 얼마든지 있어”)는 가장 벤 폴즈다운 곡으로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와 초창기 엘튼 존(Elton John)의 피아노 로큰롤로 랜디 뉴먼(Randy Newman)처럼 약자의 마음을 달래준다.


from
Super D(2004)

<Get Your Hands Off My Woman>, <Adelaide>, <Rent A Cop> 3곡이 선곡되었다. 어쩌면 이번 앨범에서 가장 흥미로운 곡일 수도 있는 <Get Your Hands Off My Woman>은 영국의 헤비메틀 밴드 다크니스(The Darkness)의 히트곡. 과장된 복고적 헤비메틀로 유명한 다크니스의 오버를 피아노 트리오로 극복(?)하기 위한 편곡 아이디어와 혼신을 다하는 보컬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Adelaide>는 호주의 도시 아델라이드를 소재로 한 곡인데 호주에서만 인기를 끈 바 있다.


그밖에

그밖에라고 말하기에는 아쉬운 곡들이 아직 남아 있다. <Bitches Ain’t Shit>은 이번 앨범에 수록된 커버곡 4곡 가운데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닥터 드레(Dr. Dre)의 명반 「The Chronic」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곡은 마음에 안 드는 래퍼와 여자를 깔보는 갱스터 랩의 고전. 나름대로 센 가사를 선사해온 벤 폴즈답게 잘근잘근 씹어대는 듯한 웨스트코스트 랩을 피아노 선율 속에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Bitches aint shit but hoes and tricks(여자들은 쓸모없고 음탕하며 환각일 뿐이야) 같은 가사를 자꾸만 흥얼거리게 만드는 서정적인 후렴구로 바꿔버렸다.

<Bruised>는 인디 싱어송라이터 벤 리(Ben Lee), 벤 퀠러(Ben Kweller)와 함께 결성한 그 이름도 정다운 벤스(The Bens)의 곡, 마지막 곡은 <Still>로 애니메이션 헷지를 위해 쓴 발라드인데, 앨범이 끝나는가 싶다가 히든 트랙이 등장한다.


벤 폴즈는 <Brick>의 히트로 팝 음악계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고 말 한 적이 있다. 히트의 비밀이 진실함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다. 자전적인 이야기인데다가 편하게 녹음한 이례적인 곡이 사랑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벤 폴즈는 히트곡을 위해 애쓰지 않는다. 그런 의미라면 이 비정규 작업은 정규보다 더 의미 있다. 유난히 발라드가 많은 앨범이라
한국 실정에 맞는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이 비정규의 집합체는 벤 폴즈가 정규보다 더 솔직하고 편하게 만들었을 거라 짐작이 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by slowtry.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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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에 나온 앨범.
이쯤이면 뉴 뮤직 카테고리에 부끄럽지 않다 할 만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