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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상반기 결산

올 상반기는 조용한 듯했지만 내적으로 무척 힘든 시기였다. 출판 부문을 맡은 2008년 이후 함께했던 이지혜 팀장이 퇴사하고 아름과 내가 기획편집의 역할을 전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첫 해인 2011.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스테디셀러는나의 빈칸책'디자인 뮤지엄' 시리즈 정도였고 상반기 출간 예정 타이틀은 디자인 분야의타이포그래피 워크샵시리즈와  ‘친환경 생활' 시리즈(는 작업이 지연되어 하반기로 밀리고 말았다)가 고작이었다. 영업 목표를 설정한 첫 해에 손에 쥔 것은 지푸라기 정도밖에 없다고 할까. 지난 해 연말 나의 출판 역사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류이치 사카모토' 자서전이 1월 내한공연 이슈와 맞물려 매출을 이끌어준 이후, 3월부터 실적은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오너는 영업부진에 대해 영업담당자를 질타하지만 나는신간을 어서 내라'는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신간은 짜낸다고 나오지 않는다. 1년 전 2년 전 농사의 결과가 지금 나오는 것이다. 이런 원론적인 불만도 있었기에 나는 회사에 신간 기획을 적극적으로 해야 할 필요성을 전했다. 내년 내후년을 위해. 하지만 신간 제작을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다. 회사와 나 사이에  다소의 시각 차이가 있었다.
유일한 동료인 아름은 아쉬울 것 없이 나를 잘 도왔다. 앞으로는 그가 스스로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좀 더 배려해야 한다.
디자인 도서 외에 상반기 출간 예정인 유일한 타이틀이었던 친환경 시리즈는 제작이 한없이 늦어졌다. 이것이 나의 잘못이라 한다면 나는 회사를 떠나야 한다.
책을 내지 못했지만 준비는 많이 했다. 비교적 쉽게 착수할 수 있는 번역서 개발에 집중하여 최근 3개월 사이에 10여 종 이상을 기획하고 계약 체결하고 일부는 번역에 착수했다. 그간의 지지부진한 기획 속도를 만회라도 하는 듯. 전과 달리 외서 계약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디자인과 예술서 분야 외에 시야를 넓혀 문학과 인문 분야 타이틀까지 고려한 덕분이다. 회사 역시 출판부문의 기획을 대체로 지지하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결과 하반기에는 서둘러 진행하는 책들이 매달 한 두권씩 출간될 예정이다. 혹자는 소설부터 사회학 서적까지 넘나드는 출판 방향을 보며 종합출판사냐 방향이 뭐냐는 비아냥을 던지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방향은 선언이 아니라 흐름으로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한가지 설정한 방향은 있다. 사회적인 공기에 반응하는 콘텐츠. 쌤앤파커스가 사회에 대해 개인적인 처세로서 답을 제시한다면 부키는 사회적인 대안으로서 답하고 있듯이. 홍시는 객관적 이해와 희망으로 반응하고 싶다. 모든 책이 그럴 순 없을 것이다. 1년에 한 두권 정도는 그런 책을 만들기 위해 모국어를 아끼는 저자와 함께 고민해야겠다.

내년에 나올 책 중에 ‘Mule : 마약운반 이야기라는 소설이 있다. Mule은 노새라는 뜻인데 속어로 마약을 배달하는 사람을 뜻한다. 하급 조직원쯤 되는 사람일 거다. 갑자기 실직하게 된 75년 생 골든 에이지(풍요롭고 문화적으로 많이 누린 70년대생) 세대가 주인공이다. 결혼하고 애도 생겼는데 막막하게 된 이 남자 앞에 마리화나 배달이라는 생계형 범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미국 동서를 횡단하며 펼치는 로드무비 같은 소설이다. 주인공은 나와 동갑이다. 미국이나 마리화나, 나와 먼 이야기이지만 내 이야기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