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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분노하라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이 책을 번역하신 임희근 선생님을 만나 전해 받았다. (고맙습니다.)

원작인 프랑스어판은 고작 34페이지, 인터뷰(정말 가치 있고 흥미로웠다)와 추천사(조국 교수의 자칭 '선동질')가 덧붙여진 한국어판도 86페이지에 불과하여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조국 교수도 말했지만 그러나 이 책은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화두로 들어가기에 앞서,

백발이 성성하고 쪼글쪼글한 이 93세 할아버지는 나치 독일에 저항한 프랑스 레지스탕스였고 전후에는 UN과 프랑스 외교관으로 일하며 불의에 맞서는 편에 서왔다고 한다.

스테판 에셀, 이 책의  저자에게는 흥미로운 혈통의 비밀이 있는데 그의 어머니 헬렌 구른트는 소설이자 영화인 '줄앤짐'의 실제 모델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면, 그가 세살 때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핀 것이고 아버지는 그런 건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헬렌 구른트는 아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네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법이야. 그러니 항상 행복해야 한다." 스테판 에셀은 어머니의 연인(앙리 피에르 로셰)과 아버지, 세 사람 중에 어머니가 가장 사랑한 것은 자신이었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것이 인생의 큰 힘과 희망이었다고 회고했다.

그에게는 실로 큰 힘과 희망이 필요했다. 사르트르에게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그는 드골 장군 휘하에서 군인이 되었고 간첩 활동을 했고 나치 독일에 체포되어 강제 수용생활 중 두 번 탈출을 감행하여 두 번째에 성공했다. 갖은 고문 속에서도 독일군의 심문에는 늘 모국어인 독일어로 대꾸하며 저항했다고 한다.

전쟁중에 저항과 생존에 기여한 힘과 희망은 전후에 인류의 진보를 위해 제 역할을 했다. 그는 1948년 UN이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의 선언문 작성에 기여한 핵심적인 인물 여섯 사람 중에 하나였고 이후 국제기구와 프랑스 외교관으로서 세계 인권문제와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는 살아온 93년을 행복했다고 평가한다. 죽을 고비를 기적적으로 넘겼고 세계는 큰 전쟁을 마쳤고전후 인권선언으로 이를 바탕으로 한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 치하에서 벗어나 독립했고, 20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공산독재권력에 의해 유지되어온 소비에트연합이 붕괴되었다. 하지만 21세기 이후 보내온 10년은 미래를 위해 희망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스테판 에셀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가 되었다.

경제와 금융세력의 초국가적 권력화, 빈부격차의 심화와 기아문제, 환경파괴의 가속화. 이는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이 책 '분노하라'가 세계 20개국에서 번역 출간되며 커다란 '분노'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노인의 모든 지당하고 마땅한 주장은 생각하기에 따라 매우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의 말이 특별하게 들리는 건 그가 살아남은 레지스탕스여서일까? 그는 내가 만난 가장 나이든 사람임에도 가장 젊고 활기차고 긍정적이었다. 그의 모든 사회적인 활동과 업적이 그 자신의 행복과 매우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어머니의 특이한 사랑과 역사의 굴곡을 겪으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의 자유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지금 내가 있는 이곳과 나의 모습과 나의 생각이 오랫동안 불화해오는 동안 과연 나는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 부끄러움 때문만이 아니기를 앞으로의 나의 삶이 증명해주기를 희망한다. 그러려면 주변의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혁명이나 운동에 대한 인식의 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