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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스바하(야! 만세)라고 외치고 싶은 책 '원더랜드'

핸드폰 화면에 조명이 들어왔다 나간다.
깜박, 깜박 하루에도 수십번 만지작 거리는 동안 켜졌다 꺼진다.
아마도 그 횟수 만큼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들었다 다른 생각으로 옮겨 가곤 할 것이다.
며칠 전에 밥알을 씹어야 할 어금니가 혀를 깨물었는데
바로 약국으로 뛰어가야 할 만큼 아팠다.
다년간 혀를 씹어왔지만 이 정도로 씹었으면 곪을 것이고,
잘 관리해도 일주일은 바보 같이 혀를 깨물어 먹는 내 모습을 상기시키기 위해
아프고 욱신 거릴 것이다.

구세약국의 박용범 약사는 교수의 서재처럼 위용을 자랑하는 한약상자들 앞에서
오라메디 연고를 건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혀를 씹는 것은 강박증이 있기 때문인데."
나는 밥을 씹으며 반찬을 걱정했던 것일까?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는 오랜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사람은 대개 '몰입'하는 동안 최고의 행복감을 느낀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가 쓴 <몰입의 즐거움>은 학술적인 교양서로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최근에 나온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인터넷이 방해하는 몰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터넷이 조장하는 산만함은 몰입을 방해하여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산만하면 왜 안되는가? 일찌기 <돌아이> 전영록은 "요즘 젊은이들은 한 번에 두가지 일은 기본"이라며 팝송청취와 시험공부를 병행하며 아버지를 깜짝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그게 벌써 30년이 다 됐다.
깊이 있는 생각이란 무엇인가? 불교의 선禪 수행자들은, 간단히 말하면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눈에 보이는 것, 남들이 이미 그렇다고 하는 것에는 참다운 모습이 없다고 말한다. '참다운'과 '모습'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조차 않는 것이 선의 세계라고 한다. 깨달음은 말이나 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세상이 아니다. 그래서 잠시 세상이라 부르는 것이다."
매력적인 불교경전 '금강경'에 적혀 있는 부처님 말씀이다.

어쨌든 말씀을 전하고 적어야 하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지라. 진리는 약간 허튼소리처럼 들리는 말에 실리게 마련인가 보다. 불교 선승들의 선문답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독백과 대화는 비슷해 보이지 않던가. 선수행 입문서 <원더랜드: 앨리스의 황홀한 선 탐험기>는 이같은 둘 사이의 유사점에 착안했다.

"어머나, 정말 혼란스러워요. 제가 전에 알던 것들을 지금도 아는지 한번 확인해 볼게요."
이상한 나라는 지금까지 '앨리스'였던 자신이 다른 아이(메이블)일지도 모른다고 새롭게 생각해 보게 만드는 세계다. 선수행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의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것이고 자신밖에 남는 것이 없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

저자인 대니얼 도엔 실버버그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30대까지 직업 뮤지션이었다가 출가해 일본에서 수행했고, 18년 수행 끝에 뜻밖에도 길랑바레 증후군이란 병에 걸려 2년 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할 수 없었다. 몸이 통나무처럼 변했다고 한다. 신선한 피를 계속 몸에 주입하고 몸 속의 피를 빼내는 시술을 받으며 곧 죽을 것이란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병들고 죽는 것은 전혀 특이한 일이 아닌데도 그의 이력이 특이하다고 말하는 나도 어리석다. 그가 다시 살게 되었으니 계속 수행도 하고 책도 쓰게 된 것 아닌가? 결국, 곧, 죽는다. 누구나. 슬퍼하고 말 것도 없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루이스 캐럴이 선불교에 심취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이야기는 선 탐험가 다니엘 도엔 실버버그에 의해 놀라울 정도로 선의 지혜를 잘 전해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흰토끼, 공작부인, 여왕, 애벌레는 왜 그렇게 앨리스에게 퉁명스럽고 괴팍했을까? 그거야 알 수 없지만, 선수행의 스승들이 제자들에게 특별히 괴팍하게 할 때는 애써 그들을 이끌어줄 때였던 것이다.

원더랜드 - 10점
대니얼 도엔 실버버그 지음, 진우기 옮김/아름다운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