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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얀 마텔의 고귀한 바이올린 독주 같은 이야기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 - 10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작가정신


얀 마텔의 고귀한 바이올린 독주 같은 이야기

 

어느 늦은 저녁, 난 음악 하는 청소부를 만난 독특한 일화를 이야기한 후에, 의자를 밀치고 벌떡 일어나서 외칠 것 같다. ‘듣고 있니? 모든 게 말이다 ; 그래 ; 손닿을 곳에 있었지라고.

-       얀 마텔, 「미국 작곡가 존 모턴의 <도널드 J. 랭킨 일병 불협화음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을 때」에서

 

얀 마텔

「파이 이야기」로 유력 문학상을 받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얀 마텔도 20대 후반까지는 벌이가 없는 막연한 문학 청년이었다. 부모님께 기대 살며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걱정스럽지 않았다’. 왜나면 머릿속에 긴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 속에는 갓난아기나 고귀한 바이올린 독주곡에서 볼 수 있는 삶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 잠자리나 노인연금 따위나 걱정하고 있을 수 없었다.


외교관의 아들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가 직업도 없이 이런저런 밥벌이로 아르바이트백과를 써나가면서 정말 써나가야 했던 글은 바로 데뷔작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이란 작품이다. 에이즈를 앓다 죽은 친구에게서 영감을 얻은 중편소설인데, 비전문적으로 말하자면 울컥하는 뭔가가 있다. 자유와 젊음, 슬픔 속의 아름다움, 극복하기 어려운 인생의 진실, 그런 것들이 언어 위에 또 언어와 언어 사이에서 흘러 나왔다. 하루키가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하고 바랐던 언어 이상의 세계, 조금쯤 음악에 가까워진 언어 세계라고나 할까.


얀 마텔에 대해 알아보려고 인터넷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는 2주에 한번 캐나다 수상(얀 마텔은 캐나다인이다)에게 책 한 권씩을 골라 편지와 함께 보낸 지 54주째다.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 우회적인 방법인 것 같다. http://www.whatisstephenharperreading.ca에 그동안 보낸 책과 편지의 내용이 소개되어 있는데, 폴 매카트니 가사집이라 할 수 있는 「Black Bird Singing: Poems And Lyrics」라는 책도 있다.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 화자의 에이즈를 앓는 친구 이름이 이다. 폴의 개 이름은 조지 H. , 고귀한 바이올린 독주곡 같은 글을 쓰고자 하는 작가의 데뷔작에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이 등장한다. 이 정도 사실들이면 음악적인 작가를 발굴 및 소개하는 이 칼럼의 취지와 딱 들어맞는다.

 

미국 작곡가 존 모턴의 <도널드 J. 랭킨 일병 불협화음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을 때

간단히 줄여서 「미국 작곡가 존 모턴의」라고 하자. 이 단편 작품도 「헬싱키 로카마티오」를 쓸 무렵의 초기작이자, 자전적인 성격의 작품이다. 화자인 주인공은 갑자기 학업을 중단하고 워싱턴에서 회계사로 잘나가는 친구를 찾아간다. 내년 1월이면 다시 복학해 법학 학사 학위를 받을 예정이지만 그 후의 인생에 대해 확신이 없다. 한마디로 헤매는 중이었다.


친구는 너무 바쁘고 혼자 워싱턴의 뒷골목까지 쑤시고 다니던 주인공은 우연히 메릴랜드 월남 참전 용사들의 바로크 실내악 앙상블공연을 보러 간다. 거기서 <도널드 J. 랭킨 일병 불협화음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크게 감격한(“나를 놓아버린 느낌이었다”) 주인공은 공연 후 작곡가를 쫓아가, 야간에 일하는 빌딩 청소부인 작곡가를 도와 청소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랭킨 협주곡>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 또한 야간 청소부인 그는 낮에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며 왜 이 사람들은 더 요구하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삶이지만 쳇바퀴 돌 듯 단조로운 일상이 인간에게 무엇을 남기고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묻는다.


「미국 작곡가 존 모턴의」에는 기로에 선 한 젊은 예술가의 다짐이 새겨져 있다. ‘손 닿을 곳에 있었지하며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는 열여섯 작품을 열여섯 출판사에 보내 모두 거절 당하고 다시 열아홉 작품을 열아홉 군데에 보냈다. 거기서 두 작품이 받아들여졌다.


글 조용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