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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창고, 록의 헤븐

창고 라이브 - 10점
지피 (잔 알폰조 파치노티) 지음, 소민영 옮김/세미콜론


엉뚱한 얘기 같지만 한국 록의 발전을 위해 아파트를 없애야 한다. 한국에 록 밴드가 별로 없고 록 음악도 별로 인기가 없는 건, 아파트가 점령한 주거환경 때문이 아닐까, 라는 얘기다. 거라지 록(Garage Rock)이라는 장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밴드를 결성하려는 10대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창고 없음이다. 그 때문에 합주실 대여업이 요즘 성행하기도 하지만, 하루에 10시간 씩 연습해도 모자란 데 시간 당 얼마씩 주고 노래방 빌리듯 해서 무슨 음악이 될까. 그런 건 대기업 과장들에게 딱이다.

「창고 라이브 다섯 개의 청춘 송가」는 록 밴드를 하려는 4명의 10대 아이들에게 365 24시간 쓸 수 있는 합주 공간 허름한 창고가 생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짧은 이야기다. 근처에 개 짖는 소리가 조금 시끄럽고 창고엔 쥐똥이 가득하지만 연주를 위해 우리만의 공간을 가진다는 거,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인 것이다.

아버지에게 말썽 피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창고를 빌린 줄리아노가 기타, 전기 기술로 악기와 앰프 따위를 손볼 줄 아는 알베르토가 베이스, 돌격형 머리의 나치 스타일 추종자 알렉스가 드럼, 어른들에게 정신 나간 녀석 취급 받는 시니컬한 스테파노가 보컬을 맡은 이 밴드는 데모테이프를 녹음하기 위해 연습에 몰두하던 중 앰프가 맛이 가는 재난을 겪는다. 음반기획자에게 들려줄 기회를 잡았는데 이를 어쩌나. 어쩌긴 야음을 틈타 남의 연습실 문들 뜯고 장비 서리에 나선다. 도둑질이다. 범죄다. 그럴 정도로 나쁘거나 과감한 녀석들은 아니었는데, 죄의식을 넘어선 강한 욕망, 열정의 일종이다.

 

이 노래는 우리의 운명과 선택에 대한 것이다. 인생을 결정하고 욕망을 실현하는 우리 자신에 관한. 우리는 도둑질을 하고 법을 어겼다. 하지만 연주를 할 수 있게 됐다.”

 

스릴스(Thrills)라는 영국 아이들은 캘리포니아로 날아가 집을 하나 빌려놓고 음악도 쓰고 잘 놀았다. 놀면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음반들을 사서 특히 캘리포니아 서프 사운드를 들었는데, 외상 달아놓았던 음반값이 청구될 즈음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들의 사운드 만큼이나 얄밉고도 귀여운 스토리의 끝은 데뷔 앨범의 성공으로 그 돈 다 갚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심으로 유명한 노엘 갤러거의 오아시스(Oasis)공연장을 불질러 버리겠다는 위협으로 로컬 쇼에 출연해 영국 인디 레이블의 명가 크리에이션(Creation)에 발탁된 유명한 일화를 갖고 있다. 비틀즈(Beatles)는 오아시스보다 훨씬 위대한 밴드답게 무명 시절 홀대받은 앙갚음으로 한 클럽에 정말 불을 질러 버렸다.

록 음악을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내 주변에 이런 사이코들이 접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결혼해서 딸 하나 낳고 짤리지 않으려 바둥거리는 평범한 직장인인 나 같은 사람도 한 때는 무허가 가건물 벽에 계란판으로 방음벽 붙이고 좋게 얘기하면 점거 예술활동을 했으며, 공연을 위해 이웃 연습실 마이크를 잠시 빌린(?) 전력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가까이 하기 너무 먼 타인처럼 느껴진다. 아무튼 멋대로 점령할 창고도 가건물도 없는 이 곳에 록의 씨앗이 뿌리를 내릴 곳은 어디란 말인가! 어린 라디오헤드가 답한다.

 

천국에 다다르면 난 밴드를 할 거야. 그곳에선 누구든 기타를 연주할 수 있고, 누구나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거야.” - Radiohead, <Anyone Can Play Guitar>


Radiohead - Pablo Honey [[Collector's Edition (2CD)] - 10점
라디오헤드 (Radiohead) 노래/E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