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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김훈의 노래


소리는 제가끔의 길이 있다. 늘 새로움으로 덧없는 것이고, 덧없음으로 늘 새롭다.”

김훈, <현의 노래>에서


현의 노래 - 10점
김훈 지음/생각의나무


<칼의 노래>만 해도 그저 수사학이려니 했지만, 현의 노래에 대해 쓰는 작가에게 노래라는 것이 그저 말뿐일 수는 없다. <현의 노래>를 낼 즈음 월간조선인터뷰에 음악과 김훈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언급이 보인다.


문체는 완전히 제가 새로 만든 거죠. 전에는 제가 진양조 같은 24박자 짜리 문체를 썼거든요. 그런데 여기선 완전히 두 박자죠. 주어와 동사만 가지고 썼으니까. 문장을 뼉다귀만 가지고 쓴 거죠. 살은 다 빼버리고. 그런데도 그 문체를 보고 또 수사학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한국인이 역사적으로 그런 문장을 썼던 일이 없었는데 그걸 제가 만든 거죠. 내가 생각해도 엄청나요! 그 문체로 그 소설을 끝까지 써낸 거죠.”

<칼의 노래>에서 작가로서 역점을 둔 건 뭐였냐는 질문에 대한 김훈의 답이다. 이 무렵 <현의 노래>를 집필하던 김훈의 서재에는 한국 고전음악에 대한 다양한 책이 꼽혀 있었다고 한다.


늘 새로움으로 덧없는 것이고, 덧없음으로 늘 새롭다.” 이 얼마나 멋스러운 문장인가. 이 멋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 매료되고 또 비판한다. 그의 장점이자 약점이다. 끝을 맺기 어려운 도드리의 음악 세계와 같다. 작품마다 변주되는 김훈의 도드리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희망은 없거나, 있다면 오직 죽음 속에 있을 것만 같았다.”(칼의 노래),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아니면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남한산성)


작가는 세계가 그리 간단명료치 않다고 보기 때문에 이처럼 불완전한 언설에 매달린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주류 승자의 것일진데, 그렇다면 김훈은 회의주의자이자 반역사주의자다. 많은 비판 속에서도 그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뭘까? “국가의 목적은 부국강병뿐이라고 말한 건 이문열이 아니라 김훈인데도.


용산의 불을 보자. 우리는 도덕적인 가치나 경제적인 판단 중 어느 하나의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의 승리로 그 불길을 잠재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김훈처럼 오늘의 현실을 몸부림에 가까운 냉철함으로 드러내는 작가를 찾아 볼 수 없기에, 사람들은 김훈과 함께 남한산성에 스스로 가두기를 원하는 것이다.


 

영화나 소설을 보고 나서 한동안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주윤발마냥 성냥개비를 물고 다니는 소년처럼, 김훈 흉내를 내다 난삽한 문장을 쓰고 있다. 변명하자면 그의 글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료될 만한 것이다.글은 몸속의 리듬을 언어로 표현해내는 악보”(바다의 기별)라고 단언하는 매우 음악적인 작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글이 해금의 소리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소리를 주무를 수 있는 자들은 얼마나 복된가.”(바다의 기별)


해금은 두가닥 줄을 활로 켜서 소리를 내는, 참 볼품없는 악기로 한 때 깽깽이로로 불리기도 했다. 서양에 피아노의 과학이 있다면 동양에는 해금의 불완전성이 있다고 하면 오리엔탈리즘일까? 자유라고 해두자. 해금은 한국 음악의 유장함을 대표하는 악기다. 김훈 문장의, 곧 그가 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관과 유사한 수사학의 악기이다. 김훈의 문학이 대중성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이 될 수도 있을까? 글 조용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