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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눈을 읽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과 같다 - 스밀라

()을 읽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과 같다. 눈에서 읽은 내용을 묘사하는 것은 음악을 글로 설명하려는 것과 같다.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중에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10점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마음산책

 

제목의 눈에 대한 감각이라는 표현은 그저 멋스럽게 쓴 말이 아니다. CSI의 길반장에게 곤충을 읽는 지식이 있다면 스밀라 야스페르센에게는 눈에 대한 특별한 감각이 있다. 그녀는 눈을 읽을 줄 안다. “처음 그 일이 일어났을 때는 마치 다른 사람들이 다 잠들어 있을 때 나만 깨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기분이었다. 그린란드 원주민 이누이트인 스밀라는 썰매개들 조차 앞을 분간하지 못하던 안개가 짙은 날 눈을 읽으며 길을 찾아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감각은 과학적인 것과는 정반대로 직관적인 것이기에 설명하기 어렵다.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점령으로 식민지가 되었고 현대사를 거치며 덴마크화되었다.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적 삶의 방법, 추운 겨울 바다가 얼기를 기다렸다가 사냥으로 살아가는 방식은 덴마크식 ‘선진문명’에 밀려 권장되지 않았다. 덴마크어를 익혀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질서가 들어섰다. 그러나 덴마크로 온 이누이트들은 사회의 하부 구조를 이룰 뿐이다.

덴마크인 그린란드 탐사단 아버지와 이누이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스밀라는 어머니의 사망 후 아버지를 따라 덴마크로 오지만 철이 들자마자 그녀가 매진한 것은 아버지와 덴마크로부터의 탈주였다. 그녀는 북유럽의 선진문명과 과학주의 등을 혐오하는 과학자가 되었다. 눈에 대한 특별한 감각 때문에 그녀는 기상 변화가 극심하여 두려움을 일으키는 그린란드 탐사의 길잡이 역할로 연구에 동참하곤 했다. 각별히 지내던 이웃의 이누이트 아이 이사야의 죽음에서 뭔가 석연찮은 점을 발견한 것도 그 감각이었다. 이사야가 마지막으로 남긴 눈 위의 발자국에서 스밀라는 뭔가에 쫓긴 흔적을 읽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감각은 비이성적이며 문명사회에서 말로 설명되기 힘들다. “음악의 경험을 말로 강의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얘기다. 그래서 그녀의 유일한 영적인 형제는 사과가 떨어지는 것에서 만유인력을 읽어냈으며, 물이 가득 들어있는 양동이를 살짝 들어올리면 표면이 기울어진다는 사실에서 천체의 움직임의 비밀을 밝혀내려 했던 아이작 뉴턴뿐이다.


스밀라에 대해 소설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그녀는 혹독하고 아름다운 그린란드의 자연환경처럼 강인하고 섬세하게 사건의 핵심으로 파고들어간다. “스밀라. 그녀는 내가 아는 한,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자다. 매력이란 깊은 존경심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한국판 추천사는 올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김연수가 썼다. “스밀라가 내게 보여주는 세상은 구름과 눈과 얼음의 세계다. 음악처럼 언어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세계를 스밀라는 내게 보여준다.”


김연수의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달로 간 코미디언」 의 클라이맥스는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서 인용된 것으로 보인다. 앞을 못 보는 언어전문가가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된 소리만 듣고 그 곳의 정확한 지역과 풍경과 맥락을 읽어내는 장면이 두 추리소설의 공통점이다.

김연수나 페터 회나 글로 표현할 수 없다고 단정하면서도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적 기도를 중단하지 않는 작가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도 기돈 크레머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존 콜트레인과 로이 로버가 연주한 <MR. PC> 등 아름다운 음의 향연이 표현되어 있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불가능에 가까운 삶의 어떤 측면에 도달하려는 노력. 그것을 감각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John Coltrane - Giant Steps - 10점
존 콜트레인 (John Coltrane)

 

글 조용범